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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당신의 웃음소리가 내 숨소리 같은 날이 있었지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그 끄트머리에서 꽃잎처럼 흩어지던 당신의 깊고 진하고 여린 음성이 액체처럼 흐르던 우리는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아름다워서 아름답지 못할지도 모르고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지 못할 것도 모르고 그렇게 흐르고 흐르고 흘러내려서 그대를 기억하는 것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하는 토악질 같은 오늘 내 어딘가 깊숙한 곳부터 올라온 숨 같은 그대를 바라봅니다 아아 그대여
아침. 봄입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생각해 봅니다 왠지 모른 편안함 아래 뭉근히 끓는 아쉬움은 따뜻함이 어색한 3월 초의 이 날씨와 퍽 어울린다고 생각해 봅니다. 봄비가 옵니다. 생각해 보면 그대와는 봄비를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좋았던 날들, 웃었던 날들이 많았는데, 정작 그런 우리를 둘러싼 날씨가 좋았던 적은 많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억수같이 비가 왔었고, 더웠었고, 추웠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보다, 환하게 웃던 그대의 웃음을 떠올립니다. 날 붙잡고 걷던 여린 팔목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다시, 비가 반가운 계절입니다. 새삼 거친 계절 속 우리의 지난 만남이 안타깝습니다. 이 봄에 그대는 어떤 웃음을 지을지 생각합니다. 분명 아름다울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습니..
투명한 쇄골 그 아래 톡톡, 맺혀 떨어지던 너의 파아란 숨 그 애틋한 향기가 흐르던, 위태롭게 글썽이는 그 밤과 닮은 길고 긴긴 겨울 또 겨울 너는 어디쯤에 있을까 짙게 묻은 노래가 되어버린 나의 표정을 바라보던 너의 표정 우리의 사랑이 사랑이었으면 좋았을걸 사랑이었기에 사랑이 되지 못한 사랑했기에 사랑했지만 사랑받지 못한 시간들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우리는 지난한 사랑일까 지난 한 사랑일까
그렇게 너를 잊었다고 말하는 날도 있겠지 짧디 짧은 삶 속에 어느 기스 같은 어느 날 얄팍한 거짓말이든 취한 밤 성질 섞인 자조이든 혹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친구들의 비웃음이든 그렇게 결국 너를 사랑 했었다고 말하는 날도 있겠지 길 한 모퉁이에 불현듯 돋아난 너를 마주친 듯 잊은 나를 그렇게 낯설게 마주하는 날도 있겠지 너의 이름이 가슴팍을 찌르는 아픈 상처가 아닌 등판에 새겨놓은 문신 같은 날도 있겠지 괜찮은 척 하기로 했던 것도 잊고 괜찮은 줄 아는 날도 있겠지 애써 꾹 눌러 흩어버린 너를 흩어졌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겠지 너를 잊지 못했다는 말을 하기에도 새삼스러워 멋쩍은 날도 있겠지 그런 날도 있겠지 그런 날이 있겠지 울지 못한 날이 그렇게 울지 않은 날인 줄 아는 밤도 있겠지
겨울의 가장자리 눈이 옵니다 종종걸음을 걷는 발가락 끝에 얌전히 하나씩 하나씩 발에 걸치는 계절을 느낍니다 겨울은 한 해와 함께 끝나지 않아서 자꾸 지나간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닫지 못한 마음과 두고 온 시간 달고 온 감정과 눌러 붙은 아픔 같은 것들 지난한 겨울 속 불쑥 쏟아지는 이 상념들을 굳이 뭉쳐 두지 않음은 소용없음을 아는 나이여서 일까요 소용없음을 알아야하는 나이여서 일까요 까만 코트에 덕지덕지 쏟아진 것들이 붙어 영 볼품 없는 내가 거울에 비칩니다 몇 분 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오늘 하루 눅눅함에 불편해할 것만 같습니다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 시작 된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소한도 지난 겨울의 한 가운데. 아침 식사를 합니다. 냉장고 속 샌드위치를 전자레인지에 데웁니다. 우웅 하는 울림소리가 겨울 아침의 옅은 조도에 섞여 거실바닥에 묵직하게 가라앉습니다. 미지근한 보리차 한 모금과 함께 샌드위치를 씹습니다. 냉장고에 들어가서 축축해진 식빵과 시들해진 양상추, 퍽퍽한 닭가슴살이 뻐근한 아침 삐그덕대는 저작운동에 천천히 부서집니다. 그대를 보내고자 마음을 먹은 지도 벌써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마음이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이 차갑고 푸석한 마음은 급하게 먹은 것 마냥 아직 가슴 한편에 묵직합니다. 이따금씩 불편한 이 마음이 묵직하게 속에서 느껴질 때 마다 보통은 놀라고 가끔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 날들의 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그대의 커다란 눈..
너는 나의 외로움과 상관없지 너는 나의 길가에 들려오면 며칠을 반복재생하는 노래 가끔 한아름 사 두고 몇 주를 끄적이는 과자 루트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첫 해외 여행지 결말이 잘 생각나지 않는 인생 영화 너는 나의 그랬었지의 날들과 그랬었네의 날들과 그렇구나의 순간 너는 나의 외로움과 상관없지 너는 나의 그리움 마저 그리워지는 그리움 닳고 닳아 결국 그리움을 닮아버린 꾸덕하고 거대한 그 마음
내 가슴팍엔 항상 시린 바람이 별안간 정류하여 그 거대한 바람을 밤마다 보내고 또 보냅니다 가는 곳을 몰랐다면 핑계가 될까 가슴팍에 지나는 바람은 하나뿐인데 나는 내가 기다린 줄도 모르고 언제 다시 올 줄도 모르고 가져간다 했던 그 우산, 실어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차라리 떠나면 좋을 텐데 내일 비가 온다는데 옷깃을 여미면 바람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 발을 녹일 수 있을까요 혼자 앉아있는 불 꺼진 이곳에 보내는 것도 나아가는 것일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이 길 위에
별안간 비가 내리는데, 애써 짙게 덧칠한 마음들 위로. 툭. 툭. 툭. 그 와중에 무언가를 쉼 없이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는데 놓아지지 않는 무언가를 사랑이라 말하기는 조금 무서워서. 살이 나간 우산을 꼭 쥐고. 우산도 망가진 우산이라고 우산이 아니었던 건 아닌데. 망가지려고 우산이었던 것은 아닌데. 우산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나는 우산을 숭배하는 사람처럼. 흠씬 아름다운 먼 구름 아래 그대야, 앞이 흐려 보이지 않아도 돌아가는 길은 아는데 돌이키는 방법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흠뻑 망설이다가. 마음은 있잖아, 수용성이라 비가 오는 밤이면, 나는 덧칠한 마음이 더럽게 얼룩져 내리는데, 나뉜 우산 아래 그대야 비가 오는 밤이니, 이런 나라도 기억해 줄래
잊으려 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잊으리라 결심하고 유턴을 기다리는 신호등 앞에 열어낸 차창 들이치는 가을바람에 네 향기는 없고 우리 집 고양이 털만 날리더라 이제 보지 못할 네게도 나 때문에 붙어있겠구나 그게 뭐 그리 서러워 핸들에 붙은 털들을 떼며 한참을 울다가 그리움도 그런 거겠지 고양이 털처럼, 어쩔 수 없이 항상 함께 살아가다가 숨겨야 할 때 조금씩 떼어내고 괜찮은 척 살아가고 밤에 홀로 집에 오면 다시 흠뻑 들이키는 거겠지 미안해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너한테도 붙여버려서 나, 사실 늘 힘들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