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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너와 나는 밤에 헤어진 적이 없었지. 아쉬움에 망설일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까. 이 악물고 지나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요란. 그 한가운데에 너와 나는 계속 마른 웃음을 웃었고, 마른 울음을 울었어. 제멋대로인 너와 들리지 않았던 나. 웃기지? 요란스럽던 그들이 이제는 말라버린 우릴 보고 울어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도 꽃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사랑은 뭘까? 너무 빨라, 그치? 이별은 이제 좀 알 거 같은데.
기울인 잔 가득 찬 진하고 투명하며 쓰디쓴 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붉은색이라 그런가 그 빛깔로 짙게 깔리다 닫히는 담을 것을 잃은 두 웅덩이. 사랑도 그런 거야. 감아도 흐르는 거야.
희미해진 달 밝아버린 세상 살아내야 할 아침 비가 많이 오는 날 밤 횡단보도 앞 한숨처럼 흘리다가 막차 버스 안 차창에 취한 머리를 짓이기며 혼자서 곱씹다가 늦은 새벽 문득 이불을 쥐며 이를 물고 억지로 삼키다가 남모르게 남겨놓은 말. “그대라도, 행복하세요.”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던 새벽 행여나 도망갈까 있는 힘껏 널 껴안아 두근거리는 박동소리에 널 취한 듯 올려보고 쇄골에서 슥 떨어지는 너의 긴 머리카락 윗니로 살짝 물은 너의 왼쪽 아랫입술 조그만 코에서 힘껏 넘쳐흐르는 달콤한 날숨이 내 온 몸을 타고 사라락 흘러내릴 때 믿을 수 없이 빛나던 너의 두 눈의 그 안에 가득 담긴 네 안의 나. 믿고만 싶었던 너의 투명한 눈동자의 배경음악 같던 네 목소리 네 모든 숨을 가득 담아 사랑한다, 고. 그래 그때의 너는 날 사랑했구나. 그래 그거면 됐다.
온종일 방 한 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산책이라도 나갈 생각에 집을 나서면 현관 앞, 이토록 많은 햇빛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내가 모르는 사이 햇빛은 켜켜이, 꾸준하게 이런저런 곳을 비추고 있던 것 같다. 내 방에서 절전 중인 컴퓨터 화면과 그 속에 암담하게 웅크려 있을 토익 강의와 알파벳으로 가득했던 녹색 칠판을 뒤로 마주 본 세상은, 가득한 햇빛으로 환하고 눈이 부시고, 뿌옇다. 가야할 곳은 없다. 지나간 저런 곳과 나아가는 이런 곳이 있고, 그 사이에 내가 있다. 걷고 있지만, 갇혀 있다. 메시지라도 보내는 양 줄기차게 햇빛이 떨어지는 이런 길, 그 위에서 구름 없이 맑고 고운 하늘은 조금 속상하다. 길을 등지고 구석진 그늘에서 담배를 핀다. 시멘트 벽이 푸르고 적적하다. 끝이 ..
이따금씩 새벽에 이유 없이 눈을 뜰 때 회색 빛 축축한 내 방 이불 속에서 네가 떠오를 때가 있다 표정 없는 너와 눈을 마주친다 그날, 삼켰던 하고 싶었던 말들은 놓은 지 오래라 가라앉아 차마 꺼낼 수 없다. 눈을 감고 몸을 돌린다 온 몸 가득 질척한 너의 향수가 휘감겨 짓누른다 등뒤에 왜인지 떠올라버린 네가 있다. 표정 없이 가라앉는 나를 마주친다.
30도를 넘겼다는 낮을 모르게, 우리는 느지막이 저녁 5시쯤 집을 나섰다. 장마가 곧 올지 모르는 여름. 저녁은 느긋이 선선했다.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다 지나쳐버린 버스정류장. 다시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도 흐뭇했는지. 웃음 뒤로는 ‘잡은 손에서 땀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이젠 들지 않네’ 하며 무르익은 너와 나를 생각했다. 일부러 노상에 앉아 타닥타닥 숯 타는 소리를 들으며, 이 고깃집은 시끄럽지 않아 좋네. 어제 갔던 호프집은 너무 시끄러웠어. 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너의 얼굴, 적당히 기른 너의 단발머리가 위아래로 찰랑거린다. 며칠 동안 네가 말하기 망설이던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본다. 너는 멋쩍게 웃으며 ‘어떤 이야기 일 것 같아?’하며 물어본다.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많지만, 말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