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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아직은 추워, 하며 붙여 둔 뽁뽁이를 이번 주말에는 꼭 떼어야겠다 생각할 때 즈음. 장바구니에 넣어 둔 기모가 들어간 얇은 외투. 이제 얼마나 입겠나 싶어 삭제할 때 즈음. 매년 봄, 좀비 같던 ‘벚꽃 엔딩’도 올해는 예전만큼 차트에 높게는 못 올라왔네 생각할 때 즈음. 조금은 늦었나, 생각하며 뒤돌아 보네요. 많은 이름이 생각나네요. 유독 시리던 지난 겨울. 아픈 바람들을 막아 주었던 이름들을. 순간순간 걱정해준 사람들, 어깨를 두드려준 친구들, 함께 울어준 친구, 곧 괜찮아질 거라고 태연하게 웃어 준 친구, 아버지, 어머니. 아직 여물지 못한 나라는 사람. 내가 뭐라고. 술 한잔, 커피 한 잔, 핫팩 하나를 건네었던 사람들. 그래도 당신들 덕분에 유독 길었던 이번 겨울 잊었던 따뜻함을 기억하고 봄을 ..
봄. 비가 와요. 비가 와요. 나는 비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대를 만날 땐 싫어했어요 비를 싫어했던 그대는 비 오는 날이면 날 만나러 오길 버거워했잖아요. 젖는 옷을 불쾌해하며 잘 웃어주지 않았죠. 밝은 당신의 웃음을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비가 싫었어요. 그때는. 비가 와요. 나는 비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대와 헤어지곤 조금 싫어졌어요. 유독 비가 오거나 눈이오면 잘 넘어지던 그대. 그런 날이면 내 팔을 잡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종종걸음을 걷곤 했잖아요. 이제는 나 없이 걸어갈까. 혹은 다른 사람의 팔이라도 빌리는 걸까. 비가 조금은 싫어졌어요. 지금은. 비가 와요. 비에 젖은 벚꽃들이 발 아래 흘러가요. 당신과 함께 벚꽃을 보러 갔을 때는 날씨가 참 좋았었죠. 벚꽃도 아마 아름다웠겠죠? 지금은 환하게 웃..
부웅 울리는 전화에 무심결에 핸드폰을 본다. 스케쥴러에 빨갛게 떠 있는 날짜. 아. 2월 초순. 너의 생일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빨간 나의 텀블러로 커피를 마신다. 작년 새해를 맞아 너에게 주려고 산 선물은 아직도 냉장고 위에 있다. 작은 텀블러. 네가 나의 생일 선물로 이 빨간 텀블러를 주며 취직하면 꼭 이 텀블러로 물을 마시라고 했었던 게 문득 기억나 너에게 줄 새해 선물로 사놨던 텀블러였지. 너도 취업을 하면 내가 준 텀블러로 꼭 마시라고. 서로가 옆에 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항상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라고 하며 주려고 했었지. 나는 아직도 네가 준 텀블러로 물을 마시는데 작년 1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진 우리 결국 텀블러는 아직도 내 냉장고 위에서 포장도 풀지 못 한..
겨울의 끝자락 나무 가지 끄트머리에 채 떨어지지 못한 낙엽이 붙어있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줄기로 뻗어있는 기억에 끄트머리에 걸려 찬란한 어제였던 회갈빛으로 바래져 말라 비틀어진 낙엽이 언젠가 어떤 바람이 불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떤 비가 내리면 녹아 내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떤 눈이 내리면 바스러질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를 일이다 그 언젠가 버티기 힘든 추위에 날 자를 듯 한 바람에 이를 악물며 불현듯 가지 끝을 보았을 때 그때도 이렇게 남아있을까 애타는 바람에도 남아있을까 다만 곧 봄은 온다고 한다 비에도, 눈에도, 바람에도 떨어지지 못한 낙엽은 새로 돋아나는 이파리에 밀려 떨어질 것이다 언젠가 이 추위가 가신다면 언젠지 모를 이 추위가 물러나는 간절히 기다리던 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