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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비가 오는 날 걷노라면 기억 속 우산 너머 풍경들이 어지럽게 섞이곤 합니다. 그리 깊지 않은 내 품에 포옥 빠지던 당신의 얼굴과 찰랑이던 두 볼 그 어깨너머로 보이는 걷는 지 모르고 걸었던 풍경들이. 어지럽게. 기다렸구나. 당신을. 기다린 것도 잊을 만큼 오래 기다렸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버릇처럼 젖어버린 오른쪽 어깨를 털며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봅니다. 그날의 비와 닮았을까. 언제쯤이면 흐를까요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고여있는 기다린 이름은. 흘러야만 하는 걸까요. 오늘은 남몰래, 잠방잠방 되뇌어 봅니다
비가 오네생각나네속일 수 없네그때의 그 마음과 함께 흐르던그 음악이 흐르면
나에게 사랑은 나무 같은 거야. 함께 키워가는 거지 며칠 전 사랑은 터질라, 깨질라 두려운 커다란 풍선이나 유리구슬 같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해 준 말이었다. 함께 키워가는 나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손을 잡고 함께 물을 준다면, 함께 키워간다면. 무럭무럭 자라나 두 사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터지고 깨져 아픈 나에겐 어디 먼 나라의 위인이 한 말 같은, 멋진 명언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우산을 쓰고 걸어서 출근을 하다, 늦가을 비에 쏟아지듯 떨어져 내린 가로수의 낙엽들을 보았다. 누가 키우는지, 아니, 키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나무들의 처절한 시간의 흔적, 고생한 성장의 흔적이 맥없이 쏟아져 비에 물러지고 ..
그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7월 중순 즈음 이었을까? 장마철이었던 것 같아. 그 전 날에도 비가 왔었던 것 같으니까. 나는 그 풍경과 그 소리를 좋아했어. 기숙사 학교라 평일이고 주말이고 항상 활기차고 시끄럽던 우리 학교. 비가 오면 잠수한 듯 조용히 물소리만 가득했지. 간혹 지나가는 기차소리는 도로롱 물 먹은 소리가 났고,학생들 목소리 대신에 멀찍이 들려오는 청개구리 소리. 적막한 학교는 아무도 없는 듯 했고, 우산을 쓰고 밖에 나가면 우산 아래는 이 조용한 세상의 나만의 공간인 것 만 같았어.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주말에 비가 오면 괜히 우산을 들고 학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곤 했지. 아마 그날도 그러다 널 만났을 거야. 주말이기도 했고, 비도 왔으니 우연히 만났을 리는 없고, 단 둘이서 만날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