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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꽃피는 봄이오면

엄간지 2023. 3. 9. 15:50

아침. 봄입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생각해 봅니다

왠지 모른 편안함 아래 뭉근히 끓는 아쉬움은 따뜻함이 어색한 3월 초의 이 날씨와 퍽 어울린다고 생각해 봅니다.

봄비가 옵니다. 생각해 보면 그대와는 봄비를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좋았던 날들, 웃었던 날들이 많았는데, 정작 그런 우리를 둘러싼 날씨가 좋았던 적은 많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억수같이 비가 왔었고, 더웠었고, 추웠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보다, 환하게 웃던 그대의 웃음을 떠올립니다. 날 붙잡고 걷던 여린 팔목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다시, 비가 반가운 계절입니다. 새삼 거친 계절 속 우리의 지난 만남이 안타깝습니다. 이 봄에 그대는 어떤 웃음을 지을지 생각합니다. 분명 아름다울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습니다. 대답없이 무뚝뚝하던 시간을 돌아보니 문득 그대를 알았던 시절의 내가 어리게 느껴집니다. 무모했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했구나 생각합니다. 믿었었구나 생각합니다. 믿을 수 있었구나 생각합니다. 사랑했구나 생각합니다. 찰나같구나 생각합니다. 찬란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짧기에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짧기에 아름다운 것은 더욱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생각들이 자위 같은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은 무심하다 생각합니다. 그 무뚝뚝한 시간 옆 함께 걸어온 지금의 나는 과연 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날은 많이도 추웠지만, 돌이켜보는 지금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지금의 3월처럼 어색한 따뜻함입니다. 원치도 않았던 시간을 들이켜고 억지로 따뜻해진 지금이 야속하기도 밉기도 합니다. 이게 정말 맞는 일일까 생각합니다. 좋은 일일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겨울을 돌이킬 순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그대도 이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만큼 포근했으면 합니다. 추운 겨울 속 나의 환한 웃음을 떠올려 주었으면 합니다.

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침. 봄입니다. 그대도 이 봄, 가끔은 날 기억해주십시오.사랑은 아니어도 좋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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