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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희미해진 달 밝아버린 세상 살아내야 할 아침 비가 많이 오는 날 밤 횡단보도 앞 한숨처럼 흘리다가 막차 버스 안 차창에 취한 머리를 짓이기며 혼자서 곱씹다가 늦은 새벽 문득 이불을 쥐며 이를 물고 억지로 삼키다가 남모르게 남겨놓은 말. “그대라도, 행복하세요.”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던 새벽 행여나 도망갈까 있는 힘껏 널 껴안아 두근거리는 박동소리에 널 취한 듯 올려보고 쇄골에서 슥 떨어지는 너의 긴 머리카락 윗니로 살짝 물은 너의 왼쪽 아랫입술 조그만 코에서 힘껏 넘쳐흐르는 달콤한 날숨이 내 온 몸을 타고 사라락 흘러내릴 때 믿을 수 없이 빛나던 너의 두 눈의 그 안에 가득 담긴 네 안의 나. 믿고만 싶었던 너의 투명한 눈동자의 배경음악 같던 네 목소리 네 모든 숨을 가득 담아 사랑한다, 고. 그래 그때의 너는 날 사랑했구나. 그래 그거면 됐다.
출근길에 커피를 한 잔 사서 사무실에 앉아. 보통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 까지는 30분 정도 시간이 있어. 달력을 보며 스케줄을 체크하다가 그날 이후로 5월이네. 벌써. 빨대로 가라앉은 커피를 주욱 들이켜 올려. 너와 작년 이맘때 즈음 마셨던 커피. 루프탑 카페였었지 커피잔의 생김새나 카페의 인테리어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쨍하던 햇살에 때 이른 더위, 내 손을 잡은 길고 가는 너의 손가락 그리고 웃는 얼굴이 생각이 나. 행복했었나 보다. 그때도 커피는 끝 맛이 조금 썼던가. 그 이후로 때때로 그 앞을 지나갔었지 오늘도 쨍한 햇살과 때 이른 더위 다만 그 날과 다른 건 널 보러 가는 길은 이제 아니라는 것. 횡단보도에 서서 한참 옥상을 올려다보았지. 그마저 몇 개월이 지났네. 그래, 너도 많이 참았을 거야..
그는 서른하나인 나보다 어릴 때 아이를 낳으셨다지 월세 계약도 무서웠을 갓 서른의 나이 때. 퇴근 후 부랴부랴 뛰어온 강서구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간호사 품에 안긴 2.8kg의 작은 나와 처음 만나셨다지 어린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작은 단칸 옥탑 방의 크리스마스 아침 차가운 철제 문을 열고 가쁜 숨을 몰아 쉬던 그. 산타 할아버지가 집 문이 잠겨있어 밖에다 선물을 두고 가셨다는 귀여운 변명 누가 봐도 급하게 사온 포장도 안된 그 변신 로보트, 그 크리스마스 아침 선물을 건네주던 그의 차가운 손이 왜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생각나는지 모르겠어 힘들었었지 우리 집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던 하루를 넘기는 것이 긴장되고 버거웠던 나날들 혹시 내가 고쳐야 될 게 더 있다면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
응. 잠깐 이야기 해요. 그 동안 많이 힘 들었던 거 알아요. 옆에서 계속 지켜봤으니까요. 가끔 깨무는 입술파르르 떨리는 눈썹 사람들에게 말을 해도 완전히 풀리지 않죠? 무언가 말 하지 못할 이야기도 있고 친구들도 완벽히 당신을 이해하진 못 할 거고. 혼자 끙끙 앓다가 평소와 다른 본인 모습에 놀라기도 했을 거에요. 이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닌지 무섭기도 하고 혹시 남몰래 울었나요?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버티다가 버티다가 힘이 들면 연락해요. 내가 들어줄게요. 음. 다른 것 보다 그 동안 버티느라 수고했어요. 힘들었을 거 알아요. 그럼 우리, 좀 걸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