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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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서른 - 늙은 취준생 이야기

하나, 둘, 서른: 1. 햇빛

아꼬박 2019. 10. 11. 13:12

온종일 방 한 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산책이라도 나갈 생각에 집을 나서면 현관 앞, 이토록 많은 햇빛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내가 모르는 사이 햇빛은 켜켜이, 꾸준하게 이런저런 곳을 비추고 있던 것 같다.

내 방에서 절전 중인 컴퓨터 화면과 그 속에 암담하게 웅크려 있을 토익 강의와 알파벳으로 가득했던 녹색 칠판을 뒤로 마주 본 세상은, 가득한 햇빛으로 환하고 눈이 부시고, 뿌옇다.

가야할 곳은 없다. 지나간 저런 곳과 나아가는 이런 곳이 있고, 그 사이에 내가 있다. 걷고 있지만, 갇혀 있다. 메시지라도 보내는 양 줄기차게 햇빛이 떨어지는 이런 길, 그 위에서 구름 없이 맑고 고운 하늘은 조금 속상하다.

길을 등지고 구석진 그늘에서 담배를 핀다. 시멘트 벽이 푸르고 적적하다.

 

끝이 말린 담배 꽁초를 비타 500 병에 넣는다. 적어도, 해로운 인간은 아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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