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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먹구름이 예쁘다

엄간지 2019. 6. 24. 13:52

30도를 넘겼다는 낮을 모르게, 우리는 느지막이 저녁 5시쯤 집을 나섰다.

장마가 곧 올지 모르는 여름. 저녁은 느긋이 선선했다.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다 지나쳐버린 버스정류장. 다시 돌아가는 길이 왜 그리도 흐뭇했는지. 웃음 뒤로는 잡은 손에서 땀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이젠 들지 않네하며 무르익은 너와 나를 생각했다.

일부러 노상에 앉아 타닥타닥 숯 타는 소리를 들으며, 이 고깃집은 시끄럽지 않아 좋네. 어제 갔던 호프집은 너무 시끄러웠어. 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너의 얼굴, 적당히 기른 너의 단발머리가 위아래로 찰랑거린다.

며칠 동안 네가 말하기 망설이던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본다. 너는 멋쩍게 웃으며 어떤 이야기 일 것 같아?’하며 물어본다.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많지만, 말하지 않았다. 미소 짓는 나의 얼굴을 보며 너는 잠시 눈을 돌렸다가, 입술을 잠시 물어뜯다가, 이윽고 다시 웃으며 팔을 뻗어 맑은 소주를 한 잔 따라주었다.

눈이 발개져 힘겹게 내려놓은 너의 회색 빛. 불안함.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이 머리 위로 뭉게뭉게 흐르고

너의 자그마한 볼에 흐르는 바다에 내 손을 조심스럽게 담근다.

검게 타고 있는 고기와, 옆 테이블 회색 나시 티 아가씨의 주사 뒤로 멀리 하늘이 보인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말했다.

 

먹구름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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