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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너는 나의 외로움과 상관없지 너는 나의 길가에 들려오면 며칠을 반복재생하는 노래 가끔 한아름 사 두고 몇 주를 끄적이는 과자 루트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첫 해외 여행지 결말이 잘 생각나지 않는 인생 영화 너는 나의 그랬었지의 날들과 그랬었네의 날들과 그렇구나의 순간 너는 나의 외로움과 상관없지 너는 나의 그리움 마저 그리워지는 그리움 닳고 닳아 결국 그리움을 닮아버린 꾸덕하고 거대한 그 마음
내 가슴팍엔 항상 시린 바람이 별안간 정류하여 그 거대한 바람을 밤마다 보내고 또 보냅니다 가는 곳을 몰랐다면 핑계가 될까 가슴팍에 지나는 바람은 하나뿐인데 나는 내가 기다린 줄도 모르고 언제 다시 올 줄도 모르고 가져간다 했던 그 우산, 실어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차라리 떠나면 좋을 텐데 내일 비가 온다는데 옷깃을 여미면 바람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 발을 녹일 수 있을까요 혼자 앉아있는 불 꺼진 이곳에 보내는 것도 나아가는 것일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이 길 위에
별안간 비가 내리는데, 애써 짙게 덧칠한 마음들 위로. 툭. 툭. 툭. 그 와중에 무언가를 쉼 없이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는데 놓아지지 않는 무언가를 사랑이라 말하기는 조금 무서워서. 살이 나간 우산을 꼭 쥐고. 우산도 망가진 우산이라고 우산이 아니었던 건 아닌데. 망가지려고 우산이었던 것은 아닌데. 우산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나는 우산을 숭배하는 사람처럼. 흠씬 아름다운 먼 구름 아래 그대야, 앞이 흐려 보이지 않아도 돌아가는 길은 아는데 돌이키는 방법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흠뻑 망설이다가. 마음은 있잖아, 수용성이라 비가 오는 밤이면, 나는 덧칠한 마음이 더럽게 얼룩져 내리는데, 나뉜 우산 아래 그대야 비가 오는 밤이니, 이런 나라도 기억해 줄래
완벽한 이별을 위해 조금씩 연습해놓을 걸 대책 없이 생활을 채워버린 너의 부재가 오늘도 회사를 가고 밥을 먹고 잠을 자게 만들어 오늘은 네가, 돌아올 것 같아서, , ,
함께하지 않은 밥을 씹고 입안을 한 모금 물로 적시고 나면, 아직도 어떤 냄새를 갖고 있을 음식들이 조각난 채 위장 안에 켜켜이 쌓이는 상상을 해. 그런 상상 속에서는 삼켰으니 소화가 될 것이라는 이치가, 기대나 예상이,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어. 조금 전에 씹고 삼킨 것들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가라앉고 녹아서 아미노산이나 포도당 따위가 된다니. 디펩티드니 킬로미크론이니 갈락토오스, 먼 별에나 살 것 같은 이름들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니. 너와의 일이 이별이라는 사람들 말처럼 당황스러워. (……) 대체 내 살 어디에서 킬로미크론을 만질 수 있다는 걸까. 소화가 안되는 참으로, 오랜만에 너의 이름을 발음해봤어. (……) 킬로미크론을 뱉을 수는 없잖아. 소화는 꼭 해야하는 일일까. 가끔은 네가 없..
잊으려 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잊으리라 결심하고 유턴을 기다리는 신호등 앞에 열어낸 차창 들이치는 가을바람에 네 향기는 없고 우리 집 고양이 털만 날리더라 이제 보지 못할 네게도 나 때문에 붙어있겠구나 그게 뭐 그리 서러워 핸들에 붙은 털들을 떼며 한참을 울다가 그리움도 그런 거겠지 고양이 털처럼, 어쩔 수 없이 항상 함께 살아가다가 숨겨야 할 때 조금씩 떼어내고 괜찮은 척 살아가고 밤에 홀로 집에 오면 다시 흠뻑 들이키는 거겠지 미안해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너한테도 붙여버려서 나, 사실 늘 힘들었었어
밤 흔들리는 버스 회묵색 바닥에 작은 뱀처럼 흐르는 오히려 수치와 가까운 아쉬운 마음 사람은 가득한데 혼자 타고 가는 버스 속에서 짐승의 살점으로 만든 낡은 끈을 잡고 나를 구길대로 구겨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버스는 타려는 사람만 타고 내리고 싶을 때면 내리는 것이고 타고 싶은 버스더라도 보낼 수 있고 가끔은 잘못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영원히 탈 수 있는 버스는 없고 라고 생각한 걸 잊은 것처럼 혼자서 혼자로 돌아가는 밤 삶이 미련보다 흐릿하여 움켜잡는 중탁한 가을밤
맑은 하늘에 비가 옵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 어떤 날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비가 오는 날에만 당신을 생각합니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내가 받은 약은 맑은 날에만 유효한가 봅니다. 다행이고, 불행입니다. 당신이 생각나서, 불행입니다. 비로소 당신이 생각나서, 다행입니다. 잊힘을 증명하듯 이따금 생각나는 당신도, 이 하늘을 맞고 있는지. 부슬비라면 서둘러 지나가면 될 일입니다. 소나기라면 잠시만 피하면 될 일입니다. 장대비라면 그저, 하늘을 원하면 될 일입니다. 괜찮습니다.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으니까요. 당신과 나의 사랑처럼 비가 그칠 때까지만, 머금는 추억이 있습니다. 아직은 비가 옵니다. 다행, 입니다
그리운 것을 그리운 대로 놓아두고 부드럽게 몽우리진 차가운 들숨 한 입에 설익은 설움 한 모금 꿀꺽 삼키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