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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월세 집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다가 낮은 담장 너머로 공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높은 톤의 웃음- 끊임없이 이어지는 까르륵 소리를 들으면서, 내 아이는 언제쯤일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문득. 나는 돈 값을 하고 있나, 생각이 들었어. 일주일에 한 번 파견으로 나가는 텔레비전 회사는 여러 번 얘기했지. 공지 번역이나 해외 고객 클레임 대응이 주긴 하지만, 그 외 리서치라든지 어플리케이션 사용성 점검이라든지, 하루 네 시간으로는- 업무들을 처리하기 버겁다는 얘기도 했어. 차장이 나를 마뜩잖아 한다는 것도, 기억나니. 사람이 사람을 비웃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차장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어. 입 꼬리가 하나, 둘, 셋, 올라가면서, 웃지 않는 눈으로 내 미간을 뚫..
식당에 앉자마자 냅킨을 깔고 수저를 방향에 맞춰 놓는다. 모두 오른손잡이시니까 젓가락을 오른쪽으로. 엎어져 있는 컵을 하나씩 휙휙 돌려서 세우고 찬 물을 담아 나눠 드린다. 메뉴판을 팀장님께 드리고 무엇을 시키실지 여쭤본다. 다음은 책임님, 선임님. 5명의 메뉴를 기억해야만 한다. 차장님 메뉴가 뭐였더라, 짬뽕 밥이었나 그냥 짬뽕이었나. 나와 선임님은 같은 메뉴를 시켰다. 먼저 나온 메뉴를 선임님에게 드리고 기다린다. 아, 내 것도 이어서 나온다. 아아 안타깝다 내 볶음밥. 내 거 먼저 나오면 먹지 못하고 식어버리잖아. 그야 팀장님 것이 안 나왔으니까. 한창 식사 중. 별안간 선임님이 종업원을 불러 물을 한 병 더 시킨다. 선임님 잔에 물은 아직 많은데? 아, 팀장님 컵이 비어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왜 ..
그래, 그 날은 좀 짜증이 나더라. 날이 오지게 더웠고, 전날 마신 소주가 위장부터 식도까지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파트로 나가는 회사에선 채용 면접 때부터 내 경력을 문제 삼던 차장이 최소 사흘짜리 검수 작업을 퇴근 네 시간 전에 던져 놓고 뭐가 빠지도록 시간 맞춰 어떻게든 해 가니 “진짜 다 했다고? oo 씨가 이렇게 일 잘하는지 몰랐네?” 비꼬기나 하고, 유부남과 바람난 전 여자 친구 카톡 프로필에는 금빛 커플링이 올라가 있던 날. 장미 상가, 엘리베이터 안이었지. 얘기한 적 있을 걸? 잠실역, 사우론의 탑 같은 빌딩 아래로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거리를 메우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이 공원에 놀러 온 예쁜 옷의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그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생각보다 허름한 종합..
너 없는 일상이 아직 어색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일어나고, 운동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한다. 그러나 기능을 상실한 핸드폰처럼, 나의 하루는 더 이상 울림이 없다.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덥고, 끈적하고, 무료하다. 운동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청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 너와의 이별은 내 20대를 판결하는 사건이었다. 스물 둘부터 서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억의 이음새에는 너와의 시간이 있다. 너의 시간은 곧 나의 시간이기도 했다. 중복된 기록 속에서 나는 죄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의 죄가 아니다. 나는 네가 밉다. 안쓰럽다. 나를 겨냥한 너의 거짓들이 밉고, 거짓들로 채웠을 너의 시간이 안쓰럽다. 나와 네 가족들에게 너는 나의 연인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