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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주인을 보면서 꼬리를 흔든다고들 하지. 그 주인이 자신을 생전에 잘해줬건 학대를 했건 말이야. 죽기 직전에 상황에서도 주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버티다가 주인을 보고 좋아하며 꼬리를 흔들다 쓰러져 죽기도 하고 말이야. 그 주인이 뭐라고 말이야. 그치? 수많은 강아지 중 고르다 우연히 만났을 뿐인 주인인데 말로, 때로는 폭력으로 괴롭히고 수 많은 시간을 컴컴한 집에 혼자 버려뒀는데 말이야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좋아할까 그러고 보면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상적인 누군가를 향하는 건 아닌가 봐 그때 내 앞에 날 선택하려는 주인을 내 앞에 있는 너와 타이밍이 맞는다면 어쩌다 사랑이 되는 거지 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 채 그저 내가 사랑하기..
나에게 사랑은 나무 같은 거야. 함께 키워가는 거지 며칠 전 사랑은 터질라, 깨질라 두려운 커다란 풍선이나 유리구슬 같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해 준 말이었다. 함께 키워가는 나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손을 잡고 함께 물을 준다면, 함께 키워간다면. 무럭무럭 자라나 두 사람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터지고 깨져 아픈 나에겐 어디 먼 나라의 위인이 한 말 같은, 멋진 명언같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우산을 쓰고 걸어서 출근을 하다, 늦가을 비에 쏟아지듯 떨어져 내린 가로수의 낙엽들을 보았다. 누가 키우는지, 아니, 키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나무들의 처절한 시간의 흔적, 고생한 성장의 흔적이 맥없이 쏟아져 비에 물러지고 ..
최선을 다 하지 말아야 될 필요가 있음을 순수한 마음이 독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 게하필이면사랑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걸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유명한 대사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가 부메랑을 날리며, 무슨 악에라도 받쳤는지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따당은! 돋아오는 거, 라고. 그렇다. 모든 사랑은 돌아온다. 내 마음으로부터 의기양양하게 떠나- 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간다. 잠시 뜨겁고 뜨거운 전쟁을 치르다가, 물러났다가,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가, 결국 고개 숙인 패잔병으로 돌아온다.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오는 사랑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모든 사랑은 돌아온다. 다치고 망가져서 헤진 모습으로 다시 내게. 혹은, 그 사람의 사랑이 내게서 떠나간다. 혹은, 내 사랑이 그 사람으로부터 떠나간다. 표현이야 어쨌든, 한 번 떠나간 그 사람의 사랑과 내 사랑은 다시금- 그 사람에게든, 내게로든, 돌아가거나 돌아온다.혹여 ..
우린 작은 펜션을 빌릴 거야 우리의 부모님, 너의 학창시절 친구들, 대학교 동기들 옹기 종기 잔디밭에 앉아 잡담을 하며 우릴 기다리겠지 작은 화환을 쓴 너와 올림머리를 한 나는 팔짱을 끼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소중한 사람들 앞으로 걸어가 너는 어색해하며 하얀 꽃다발을 던질 거야 우리는 강아지를 키울거야 웰시코기 한 마리와 포메라니안 한 마리 정도가 좋겠어 잠이 많은 너는 내게 아침밥은 해 주지 않지만 강아지 밥을 주는 걸 보면 나는 말해두겠는데, 질투할거야 그러면 네가 날 안고 입을 맞춰 줄 테니까 우린 일년에 한 두 번은 멀리 여행을 갈 거야 너는 유독 여행을 좋아하니까 유럽으로, 미국으로, 동남아로, 호주로 나는 귀찮은 척 나서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막상 가면 내가 훨씬 재미있게 놀겠지 하나씩 사서 ..
예기치 않게 네가 떠올라버린 날 계단에서 넘어져버린 날 날 놓아버린 널 놓아버린 날
사랑에 속지 않는 나이가 됐다 사랑에 속고 싶은 나이가 됐다
사랑은 나에게 여전히 어렵다. 너는 그 때 왜 커피는 안 마시고 창 밖만 보고 있었는지.이별을 말하며 돌아서면서도 너는 어째서 커피 값을 계산하던 나를 기다려 주었는지.멀어지던 너를 어떤 말을 하며 돌려 세웠어야 너는 그런 차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을지. 그리고 그 겨울 날,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를. 무엇하나 줄 수 없었던 나를 넌 왜 받아 주었는지. 수 십 번의 겨울이 지난다고 한들, 나는 이 질문들에 대답 할 수 있을까.
너 없는 일상이 아직 어색하다. 어제와 다름없이 일어나고, 운동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한다. 그러나 기능을 상실한 핸드폰처럼, 나의 하루는 더 이상 울림이 없다.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덥고, 끈적하고, 무료하다. 운동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청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 너와의 이별은 내 20대를 판결하는 사건이었다. 스물 둘부터 서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억의 이음새에는 너와의 시간이 있다. 너의 시간은 곧 나의 시간이기도 했다. 중복된 기록 속에서 나는 죄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의 죄가 아니다. 나는 네가 밉다. 안쓰럽다. 나를 겨냥한 너의 거짓들이 밉고, 거짓들로 채웠을 너의 시간이 안쓰럽다. 나와 네 가족들에게 너는 나의 연인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