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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너를 사랑하는 일은 떠날 시간이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달려가는 일과 같았다. 언제 문이 닫힐지도 혹은 닫히지 않을지도 모른 채 제발 오를 수 있기를 마음 졸이며 커다란 떠나감을 두려워하는 일. 허탈하게 손 흔드는 내 모습을 하염없이 상상하는 일.
넌 막을 내렸고 내가 남은 무대엔 조명이 꺼지지 않았다. 나는 독백하는 역할이 되었다. 내 발소리가 삐걱거리는 무대에선 종일 척척한 누수가 있었다. 객석의 문을 잠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대에게,하루의 처음 듣고 싶은 안녕이었다는 것.한나절 밤을 가로지르는 목소리였다는 것.다음을 짙게 약속하는 손가락이었다는 것.마주앉아 얄궂게 치대는 다리였다는 것.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흘러내린 새벽이었다는 것.터져버린 울음이 향했던 원망이었다는 것. 그대에게,한때나마 질척한 간절함이었다는 것. 내가내가 있었다는 것.
곁에 앉아 음미하고 싶기도 하였고 멀리서 가만, 지켜보고 싶기도 하였다. 깊게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기도 하였고 숨이 차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였다. 담뿍 젖은 걸음이 버겁기도 행여 쏟을까 애닯기도 잡을 수 없어 보내기도 하였다. 아무리 삼키어도 질리지 않았다. 태연히 넘기어도 생명과 같았다. 네가 그랬다.
그날, 설령 비가 조금 덜 와서 우리가 한 잔을 덜 마셨더라도. 그날, 만약 비가 조금 더 와서 우산을 각자 쓰고 걸었더라도. 그날, 괜스레 손잡고 걷고 싶은 마음에 함께 산책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날 이후의 모든 걸 알고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그날, 나는 너를 다시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달이 빛나는 이유는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 유난히 그대가 보고 싶은 날에는 달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대도 저 달을 보고 있다면 그대 모습이 왠지 비쳐 보일 것 만 같아서.
희미해진 달 밝아버린 세상 살아내야 할 아침 비가 많이 오는 날 밤 횡단보도 앞 한숨처럼 흘리다가 막차 버스 안 차창에 취한 머리를 짓이기며 혼자서 곱씹다가 늦은 새벽 문득 이불을 쥐며 이를 물고 억지로 삼키다가 남모르게 남겨놓은 말. “그대라도, 행복하세요.”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스며들던 새벽 행여나 도망갈까 있는 힘껏 널 껴안아 두근거리는 박동소리에 널 취한 듯 올려보고 쇄골에서 슥 떨어지는 너의 긴 머리카락 윗니로 살짝 물은 너의 왼쪽 아랫입술 조그만 코에서 힘껏 넘쳐흐르는 달콤한 날숨이 내 온 몸을 타고 사라락 흘러내릴 때 믿을 수 없이 빛나던 너의 두 눈의 그 안에 가득 담긴 네 안의 나. 믿고만 싶었던 너의 투명한 눈동자의 배경음악 같던 네 목소리 네 모든 숨을 가득 담아 사랑한다, 고. 그래 그때의 너는 날 사랑했구나. 그래 그거면 됐다.
나도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그렇듯 강물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가로등 불이 그렇듯 무심결 바라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그렇듯 아무것도 아닌 나로서 그저 평범하게 쓰다듬어지고 예쁜 눈으로 바라보아지고 웃는 얼굴을 마주보아지며 벅찬 울림과 격한 떨림은 눈이 멀 정도의 반짝이는 감정은 바라지 않아요 이제 더는 믿지 않아요 그저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어요 나도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