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아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입술은 두 음절마다 비쭉 나와 나를 향하고, 결심한 듯 곱게 모아져 날 향하는 마지막 입 모양에 나도 씨익 웃어 보인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당신의 말에 벌써 취한 느낌이다. 당신의 긴가민가한 표정과 확신이 없는 태도는 나를 더욱 설레게 한다. 당신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이토록 특별한 말을 나에게 해주었을까. 나의 외모였을까? 아니면 나의 성격이었을까? 어쩌면 신발의 취향, 손목에 건 팔찌, 뿌린 향수, 혹은 쓰는 어휘나 말투와 같은 사소한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은 밝게 웃는 나를 주목한다. 친구들은 왜 너에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냐고 질투어린 말들을 나에게 건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한 번도 못 들어 봤다고들 하지.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
헤어짐을 실감하는 건 어떤 순간일까 주말이 한가 할 때 일까 외로운 밤에 훌쩍일 때 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느낄 때 일까 문득 떠올렸을 때 많이도 흐려진 기억을 발견했을 때 일까 생각해보면 헤어짐이라는 건 어떤 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 나를 조금씩 놀라게 했던 것 같다 한가한 주말에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 외로운 밤에 훌쩍이다 지쳐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잔 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느끼며 너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때 많이도 흐려진 기억을 발견하고 피식 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조금씩 너와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헤어짐은 어떤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긴 과정이라는 걸 그렇게 나는 너와 오래도 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슬..
늦은 밤, 고속 버스를 탄다. 시골길, 창 밖으로 드문 드문 늘어서 있는 가로등을 지나치면서, 가로등 아래 주황색 빛 무리들을 보면서, 그 사이로 푸른 어둠 속을 헤아리면서- 누군가 걸었을, 걷지 않았을 그 길 위에서 지난 날을 꺼내어 본다. 지금은 먼 곳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추억과 추억 사이에는 잊은 기억조차 없는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은- 한 때 좋아했지만 오랫동안 읽지 않은 책, 그 사이의 먼지와 같은 것이어서- 책장을 펼치는 순간, 흩어진다. 다만,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먼지가 콧속을 통해, 비강을 넘어, 식도를 타고, 폐를 찔러, 아픈 재채기로 흘러나오는 때. 추억은 대체로 아름답다. 기억은 이따금 날카롭다. 지금은 먼 곳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감은 눈 너머로 빛과 어둠, 어둠과 빛이 ..
서른이 되었다. 더우면 에어컨을 좀 더 자주 켜게 되었고, 조금 좋은 맥주를 사 먹게 되었다. 생각만 하던 자동차의 견적을 알아보며 몇 년 돈을 더 모아야 되는지 계산해보고, 전세 대출에 대해 자주 찾아본다. 요즘 부모님은 친구분들의 따님을 자꾸 보여주신다. 나는 “다음에 만나면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해” 너스레를 떨곤 한다. 내 취업만 되면 세상 아무 미련 없을 거라던 할머니. 만나는 처자 없느냐고 자꾸 물어보신다. 미련이 생기신 모양이다. 다행이다. 7월 11일.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자연스레 술이다. 가끔 만나서 그런지 할 이야기도 없다 싶지만 소주 세 잔이면 없던 이야기도 술술 나온다. 고등학교 땐 술 없이 어떻게 놀았을까.. 여전히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