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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헤어짐에 대한 단상

엄간지 2018. 8. 20. 14:45

 

헤어짐을 실감하는 건 어떤 순간일까
주말이 한가 할 때 일까
외로운 밤에 훌쩍일 때 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느낄 때 일까
문득 떠올렸을 때 많이도 흐려진 기억을 발견했을 때 일까

 

생각해보면 헤어짐이라는 건
어떤 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 나를 조금씩 놀라게 했던 것 같다
한가한 주말에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
외로운 밤에 훌쩍이다 지쳐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잔 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느끼며 너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때
많이도 흐려진 기억을 발견하고 피식 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조금씩 너와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헤어짐은 어떤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긴 과정이라는 걸
그렇게 나는 너와 오래도 헤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슬픔도 다른 형태로 와닿고 있더라
처음에는 너의 부재에
그다음에는 잘해주지 못한 나에게
그다음에는 다신 만날 수 없다는 현실에
그다음에는 나만 슬퍼한다는 비참함에
그다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고 있는 내 모습에
그다음에는 잊힘을 뿌듯해하고 있는 내 모습에
그다음에는 모두 옛날 일이라고 자조하는 내 모습에

 

너와 한 순간도 놓치기 싫었던
그 밤들
그 많은 약속들을
잊기 위해 애쓰고 지워지길 바란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들은 그만큼 아픈 가시가 되어 돌아오고
피하고만 싶고 사라지기만을 바라기에
한때는 더없이 소중했던 것을 미워해야만 하기에 참 슬프다.

 

너를 만났던 계절이 다가온다.

 

어쩌면 너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내가 네게서 잊혀 가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자조했을까.

 

만약 너도 그랬다면

우린 아직 헤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멍청히도 미루고 미루고 미뤄서

그 언젠가 느끼지도 못할 만큼 작아질 우리의 헤어짐을

우린 아직

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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