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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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인생은 서른서른해

엄간지 2018. 8. 16. 14:58

서른이 되었다.


더우면 에어컨을 좀 더 자주 켜게 되었고, 조금 좋은 맥주를 사 먹게 되었다. 생각만 하던 자동차의 견적을 알아보며 몇 년 돈을 더 모아야 되는지 계산해보고, 전세 대출에 대해 자주 찾아본다.

요즘 부모님은 친구분들의 따님을 자꾸 보여주신다. 나는 다음에 만나면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해너스레를 떨곤 한다. 내 취업만 되면 세상 아무 미련 없을 거라던 할머니. 만나는 처자 없느냐고 자꾸 물어보신다. 미련이 생기신 모양이다. 다행이다.

 

7월 11일.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자연스레 술이다. 가끔 만나서 그런지 할 이야기도 없다 싶지만 소주 세 잔이면 없던 이야기도 술술 나온다. 고등학교 땐 술 없이 어떻게 놀았을까..

 

여전히 우리는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집은 언제 살 건지, 지금 있는 직장은 언제까지 다닐 건지. 다만 예전에 비해서 이라는 단어를 조금 덜 쓰는 느낌일 뿐.


나는 밥을 먹으면서 , 나 오늘 생일이다.”라고 말 했다. 친구는 놀란 얼굴로 밥은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하긴 뭐 그럴 만도 하다. 내 생일, 한 두 번도 아니고.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덕분에 여름은 나에게 30번째다. 가을이 오기 전 까지 여름은 내가 가장 많이 겪은 계절이다. 올해 여름은, 나의 30번째 여름은 많이 어지럽다. 수 십 년 만에 난생 처음 겪는 기록적인 더위보다도 수 십 년 만에 난생 처음 겪는 서른이.

아니, 괜한 의미부여에 느낌만 그러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느낌 자체가 오묘하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도 아니고, 변화에 대한 경계심도 아니다. 막연한 불안함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픔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서른이라 생경하고, 서른이라 어색하다. 서른이라 조금은 서글프고, 서른이라 힘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서른 하나가 되어가는 나는, 조금은 싫다.

그래, 서른서른한 기분이다. 나는 서른이기에 서른서른하고, 곧 서른마저 아니기에 서른서른하다.

 

그날 나와 친구는 얇은 옛날 삼겹살을 먹었다. 얇디 얇은 냉동 삼겹살은 휙휙 잘도 익어간다. 10, 20, 3010년씩 삼겹으로 쌓인 나의 삶도 준비 없이 쓸데 없이 빨리도 익어가는 느낌이다. 그날 나와 친구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몰라도 지나간 사랑을, 불안한 미래와 같은 매일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나도 바싹 익어버린 삼겹살을 먹었을 것이다.


서른서른한 나의 서른 번 째 생일은, 그리고 나의 서른 번 째 여름은 서른서른하게 서른서른하고 있다

인생은

아마도

너무나

서른서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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