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너는 그날 회사 생활이 힘들다며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차라리 백수가 되고싶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널 데려다 줄 너의 아파트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난 아파트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네 굳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보는 이 없는 손을 흔들고 이미 불이 켜져있는10층 너의 아파트희미한 강아지 짖는 소리를 듣고 골목길에 자리한 보일러 꺼진 2층 원룸으로 향한다. 그날고작 계단 10개 오르는 허벅지가 조금 아팠다.
크로스백을 정리한다. 바깥 주머니에서 잡동사니를 꺼낸다. 핸드폰, 담배, 라이터, 영수증, 지갑을 차례로 방 한쪽에 던져 놓고 티슈로 남아 있는 담뱃재를 닦아낸다. 가방 안에서 노트북, 소설책, 과외 교재를 꺼낸다. 역시나, 담뱃재를 털어낸다. 왼쪽이 사라졌다. 나는 늘 크로스백을 오른쪽으로 늘어뜨리고 걸었다. 그러므로, 내 왼쪽은 언제나 너였다. 종로를, 인사동을, 삼청동을, 북촌 마을을, 너의 집 앞을, 내 왼쪽을 너에게 내어준 채 우리는 발을 맞춰 걸었다. 나는 너의 오른손과 오른뺨과 오른 눈과 오른 눈썹, 오른 이마를 사랑했다. 아마, 그 남자는 너의 왼쪽을 사랑했을 것이다. 연락이 뜸 해지고 거짓말이 늘었던 그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네가 그 남자를 만나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 네 카톡 프로필은 ..
사랑은 나에게 여전히 어렵다. 너는 그 때 왜 커피는 안 마시고 창 밖만 보고 있었는지.이별을 말하며 돌아서면서도 너는 어째서 커피 값을 계산하던 나를 기다려 주었는지.멀어지던 너를 어떤 말을 하며 돌려 세웠어야 너는 그런 차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을지. 그리고 그 겨울 날,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를. 무엇하나 줄 수 없었던 나를 넌 왜 받아 주었는지. 수 십 번의 겨울이 지난다고 한들, 나는 이 질문들에 대답 할 수 있을까.
누구나 비밀이 있지. 나는, 향수의 향기가 좋아. 길을 가든, 지하철이든, 스쳐가는 향기가 좋아. 버스라면 슬며시 그 바로 뒷자리로 가서 은은히 풍겨 오는 향기를 핥지. 어떤 제품인지는 몰라. 향수를 좋아하진 않거든. 다만, 그게 좋은 거야. 체취를 감추는, 일반적인 어떤 것으로 자신을 감추려는, 이름 모를 향수의 날카로운 향기가 좋아. 향수를 뿌리면서 감춰야 할 그 사람의 비밀, 그 의도, 의도 속에 안전하게 숨은 당신의 체취가 호기심을 자극해. 누구나 비밀이 있지. 들키고 싶지 않겠지. 그런데 말하고 싶을 거야. 또한, 말하고 싶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게 마지막일 테니까. 더럽고, 냄새 나고, 궁핍한 자신이 오롯이 드러나는 어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그걸 이해하길 바라고 있는. 그런 비밀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