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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의식적으로 맛있었지만 안 가는 식당이 있어. 빠르지만 돌아가는 길목이 있어. 예쁘지만 입지 않는 옷이 있어. 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행동이 있어 친구들에게 하지 않는 말이 있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는 질문이 있어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 날짜가 있어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 기억들이 있어 네가 있어 나를 봐 한 번더 봐볼래? 하나하나 모두 조심하고 무엇 하나 편하지 않고 다리를 삔 사람처럼 걸음 한번이 쉽지가 않은데 내가 괜찮길 바라는 건 너의 욕심 아닐까? 너는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식어가는 너의 마음을 몰랐을 리 없지 구차한 너의 변명을 믿었던 것도 무심해진 너의 말투에 웃었던 것도 짧아진 통화에 피곤하냐 걱정했던 것도 몰라서 그랬겠어? 몰랐을 리 있겠어? 그렇게도 너를 잘 알고 싶어하던 나인데 그냥 모른 척 했던 거지 아닐 거라고 정말 아닐 거리고 외면했던 거지 널 아직 사랑했던 거지 나는
홀로 취한 밤 구태여 너를 꺼내어 본다. 작은 액자 속에서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가고 밥을 먹고 행복하구나. 그렇구나. 이젠 다른 사람이다. 창을 닫는다.
마음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겠어? 그냥 그렇게 된 거 아니겠니 그녀도 그녀의 마음이 왜 변했는지 모르는 것처럼 너도 왜 아직도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마음은 그저 느끼는 것일 뿐이지 뭐
비가 오네생각나네속일 수 없네그때의 그 마음과 함께 흐르던그 음악이 흐르면
낡은 벽에 엉망진창 갈라진 실금 같은 장판에 커터 칼로 난도질 한 흉터 같은 너무나도 뚜렷한너의 흔적
아무리 좋은 이별이 없다곤 하지만 최소한지금까지의 나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의심은 품지 않게 너를 사랑했던 내가 부끄럽지 않게그렇게는 해줬어야지
"이제 사람이 무섭고 못 믿겠어"라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사람인가보다
수화기 너머의 친구는 살짝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고 했나.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 거 같아. 그렇게 좋은 사람을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나는 정말 나쁜 년이야.” 짤랑거리는 글라스 안의 얼음 소리와 한숨 소리가 섞여 애달프다. “나는 정말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같은 나쁜 년보다 더… 진심이야.” 잠시 친구의 훌쩍이는 소리를 듣다가, 나지막이 나는 말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중, 단 한 명 만이라도 너처럼 날 생각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겠다” 수화기 너머의 친구의 모습이 누군가로 보였다. “행복할 거 같아. 그렇게 날 생각해 줬다면…” 괜히 울컥한 마음에,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좋은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