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서른 한 줄 놓고 갑니다 (62)
인생은 서른서른해
어제는 그리움에 허우적대다 지쳐 이대로 잠겨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대여, 혹시 내가 떠오르거든 이미 죽어버린 내 주검이라도 좋으니 잠시라도 함께 잠겨주세요.
이 비는 너를 녹인 물이 틀림없다. 이것 봐, 떠난 네가 온 사방에
언젠가 먼 훗날 널 그리워하지 않는 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나를 네가 미워했으면 좋겠다.
매일 걷던 귀갓길에 당신과 함께 하던 계절이 쏟아집니다. 별안간 내가 좋아지던 그 계절이 쏟아집니다.
꾹꾹 누르고 삼켜내고 참아냈던 마음이 솟구쳐 올라 메스꺼운 날엔 하릴없이 몰래라도 널 사랑해야만 버텨낼 수 있었다.
당신을 이제 그만, 좋아하기로 다짐했었죠. 그랬는데, 좋아함을 멈추기는 너무 힘들어요.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당신이 내 마음을 차지해버려서. 일상적인 인사에도, 사소한 몸짓에도, 하물며 지나가는 농담에도 나는 당신에게 다시 또 반할 수밖에 없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기에. 내가 미쳤나봐요.
헛되이 혼신을 털어 넣어 껍데기만 앙상한 텅 빈 내 마음에 붙어있는 남은 찌꺼기지만 그 마음, 사랑이기에 꿈에라도 그대를 만나면 남은 사랑 할래요.
두 개를 사 나눠가진 컵의 이가 나갈 때 즈음 잘 어울렸던 그 신발 밑창이 닳아 갈 때 즈음 선물 주었던 이어폰의 한쪽이 고장 날 때 즈음 함께 골라 샀던 티셔츠의 목이 축 늘어날 때 즈음 예쁘다고 칭찬했던 모자의 유행이 다 지나갈 때 즈음 혹시 내가 널 잊었을까, 무서워질 때 즈음에도 혹시 내가 널 미워할까, 문득 슬퍼질 즈음에도 사랑이면 그래도 사랑이면
어떻게 알았을까 못다한 말이 아직 많은지. 밤새 이토록 큰 하얀 백지를.
그리고 남자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나 돌아보면, 웃어 보여 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