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함께하지 않은 밥을 씹고 입안을 한 모금 물로 적시고 나면, 아직도 어떤 냄새를 갖고 있을 음식들이 조각난 채 위장 안에 켜켜이 쌓이는 상상을 해. 그런 상상 속에서는 삼켰으니 소화가 될 것이라는 이치가, 기대나 예상이, 처음 보는 물건처럼 낯설어. 조금 전에 씹고 삼킨 것들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가라앉고 녹아서 아미노산이나 포도당 따위가 된다니. 디펩티드니 킬로미크론이니 갈락토오스, 먼 별에나 살 것 같은 이름들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니. 너와의 일이 이별이라는 사람들 말처럼 당황스러워. (……) 대체 내 살 어디에서 킬로미크론을 만질 수 있다는 걸까. 소화가 안되는 참으로, 오랜만에 너의 이름을 발음해봤어. (……) 킬로미크론을 뱉을 수는 없잖아. 소화는 꼭 해야하는 일일까. 가끔은 네가 없..
잊으려 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잊으리라 결심하고 유턴을 기다리는 신호등 앞에 열어낸 차창 들이치는 가을바람에 네 향기는 없고 우리 집 고양이 털만 날리더라 이제 보지 못할 네게도 나 때문에 붙어있겠구나 그게 뭐 그리 서러워 핸들에 붙은 털들을 떼며 한참을 울다가 그리움도 그런 거겠지 고양이 털처럼, 어쩔 수 없이 항상 함께 살아가다가 숨겨야 할 때 조금씩 떼어내고 괜찮은 척 살아가고 밤에 홀로 집에 오면 다시 흠뻑 들이키는 거겠지 미안해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너한테도 붙여버려서 나, 사실 늘 힘들었었어
밤 흔들리는 버스 회묵색 바닥에 작은 뱀처럼 흐르는 오히려 수치와 가까운 아쉬운 마음 사람은 가득한데 혼자 타고 가는 버스 속에서 짐승의 살점으로 만든 낡은 끈을 잡고 나를 구길대로 구겨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버스는 타려는 사람만 타고 내리고 싶을 때면 내리는 것이고 타고 싶은 버스더라도 보낼 수 있고 가끔은 잘못 내리기도 하고 그렇게 영원히 탈 수 있는 버스는 없고 라고 생각한 걸 잊은 것처럼 혼자서 혼자로 돌아가는 밤 삶이 미련보다 흐릿하여 움켜잡는 중탁한 가을밤
맑은 하늘에 비가 옵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 어떤 날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비가 오는 날에만 당신을 생각합니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내가 받은 약은 맑은 날에만 유효한가 봅니다. 다행이고, 불행입니다. 당신이 생각나서, 불행입니다. 비로소 당신이 생각나서, 다행입니다. 잊힘을 증명하듯 이따금 생각나는 당신도, 이 하늘을 맞고 있는지. 부슬비라면 서둘러 지나가면 될 일입니다. 소나기라면 잠시만 피하면 될 일입니다. 장대비라면 그저, 하늘을 원하면 될 일입니다. 괜찮습니다.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으니까요. 당신과 나의 사랑처럼 비가 그칠 때까지만, 머금는 추억이 있습니다. 아직은 비가 옵니다. 다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