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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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그야, 비가 와서 그렇습니다.

엄간지 2023. 6. 13. 14:11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비에 젖는 계절입니다

창틀의 반짝이는 고인 빗물을 술상 삼아

술잔을 잡다가,

묵직이 놓인 밤공기를 안주로 한 입.

그야, 비가 와서 그렇습니다.

 

오늘 같은 비 오는 날은

쓴 것을 삼켜내는 속 보다

빗물에 손끝 발끝 입술부터 먼저 취하는 날이라,

잔 부딪혀 줄 친구를 부를 새도 없어서

보고 싶은 그녀를 또 앉혀두고

좋았던 그때를 또 말하고,

또 말하고.

항상 마지막은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하면서,

라고, 그녀 옆에 앉은 그때의 내게 내가 말합니다.

보고 싶다고.

행복하냐고.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젖어드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흠뻑 취했음에도

쓴 것을 삼키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야, 비가 와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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