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뒤돌아, 봄 본문

잡다한 생각

뒤돌아, 봄

엄간지 2019. 4. 15. 16:24

아직은 추워, 하며 붙여 둔 뽁뽁이를 이번 주말에는 꼭 떼어야겠다 생각할 때 즈음.

장바구니에 넣어 둔 기모가 들어간 얇은 외투. 이제 얼마나 입겠나 싶어 삭제할 때 즈음.

매년 봄, 좀비 같던 벚꽃 엔딩도 올해는 예전만큼 차트에 높게는 못 올라왔네 생각할 때 즈음.

조금은 늦었나, 생각하며 뒤돌아 보네요.

 

많은 이름이 생각나네요.

유독 시리던 지난 겨울. 아픈 바람들을 막아 주었던 이름들을.

순간순간 걱정해준 사람들, 어깨를 두드려준 친구들, 함께 울어준 친구, 곧 괜찮아질 거라고 태연하게 웃어 준 친구, 아버지, 어머니.

아직 여물지 못한 나라는 사람. 내가 뭐라고.

술 한잔, 커피 한 잔, 핫팩 하나를 건네었던 사람들.

그래도 당신들 덕분에 유독 길었던 이번 겨울

잊었던 따뜻함을 기억하고

봄을 기대했어요.

 

그리고 생각나네요.

사랑이었던 이름들이.

내가 버렸던 이름이. 나를 버렸던 이름이. 나를 원망해야 할 이름이. 사무치게 미운 이름이. 아름다웠던 이름이.

삼켜야만 하는 아픔들도, 죄책감도, 원망도. 모든 게 다 버거웠지만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는 것을 알기에

무뎌질 것이라는 걸 기대했기에

봄을 기다렸어요.

 

뒤돌아 보면,

겨울이 추웠기에, 봄이 더 따뜻하고

겨울의 밤이 길기에, 봄이 더 찬란하고

겨울이 마지막이기에, 봄이 더 희망이라는 것.

 

봄은 다시 스스로 피어나는 계절이기에

여름, 가을, 겨울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봄은 한 글자로 되어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뒤돌아,

내 등을 지켜봐 준 사람들에게

그 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해 보겠습니다.

 

이젠 앞을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봄이니까요.

'잡다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마워요  (0) 2019.07.09
부작용  (0) 2019.05.21
봄, 비가 와요.  (0) 2019.04.09
사활  (0) 2019.04.09
적의보다 호의가  (0) 2019.02.2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