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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봄, 비가 와요.

엄간지 2019. 4. 9. 19:47

봄.

비가 와요.

 

비가 와요.

나는 비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대를 만날 땐 싫어했어요

비를 싫어했던 그대는 비 오는 날이면 날 만나러 오길 버거워했잖아요.

젖는 옷을 불쾌해하며 잘 웃어주지 않았죠. 밝은 당신의 웃음을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비가 싫었어요. 그때는.

 

비가 와요.

나는 비를 많이 좋아하지만 그대와 헤어지곤 조금 싫어졌어요.

유독 비가 오거나 눈이오면 잘 넘어지던 그대.

그런 날이면 내 팔을 잡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종종걸음을 걷곤 했잖아요.

이제는 나 없이 걸어갈까. 혹은 다른 사람의 팔이라도 빌리는 걸까.

비가 조금은 싫어졌어요. 지금은.

 

비가 와요.

비에 젖은 벚꽃들이 발 아래 흘러가요.

당신과 함께 벚꽃을 보러 갔을 때는 날씨가 참 좋았었죠.

벚꽃도 아마 아름다웠겠죠?

지금은 환하게 웃는 그대 얼굴만 기억나지만.

 

비가 와요.

흘러가요. 속절없이. 꽃잎이. 그때의 꽃잎이. 그때가.

당신과 내가 멀어진 듯, 기억도 까마득히 멀어져 가요.

비 오는 날엔 유독, 기분이 좋지 않은 그대 얼굴이 떠올라

그대 떠나가던 그 때가 더욱 기억나요.

야속하네요. 비는. 당신만큼.

비가 싫어졌어요.

 

난 사실 비보다

당신의 웃음을 좋아했었나 봐요.

 

당신도 이 봄.

이 비를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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