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서른, 어느 여름 본문

사는 이야기

서른, 어느 여름

아꼬박 2018. 8. 4. 22:52

그래, 그 날은 좀 짜증이 나더라.

날이 오지게 더웠고, 전날 마신 소주가 위장부터 식도까지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파트로 나가는 회사에선 채용 면접 때부터 내 경력을 문제 삼던 차장이 최소 사흘짜리 검수 작업을 퇴근 네 시간 전에 던져 놓고 뭐가 빠지도록 시간 맞춰 어떻게든 해 가니 진짜 다 했다고? oo 씨가 이렇게 일 잘하는지 몰랐네?” 비꼬기나 하고, 유부남과 바람난 전 여자 친구 카톡 프로필에는 금빛 커플링이 올라가 있던 날.

장미 상가, 엘리베이터 안이었지. 얘기한 적 있을 걸? 잠실역, 사우론의 탑 같은 빌딩 아래로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거리를 메우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이 공원에 놀러 온 예쁜 옷의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그 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생각보다 허름한 종합 상가, 대형 마트와 에스테틱과 보신탕 집이 있는. 내가 일주일에 두 번 과외를 가는 곳. 그래, 거기. 엘리베이터 안.


몇 년 전부터 탈모가 시작된 이마 끝에 맺힌 땀을 닦아 내면서,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짜증 내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택배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근처 공사장 인부는 아닌 것 같은데흐르는 땀이 자색 조끼에 흠뻑 흘러나오는, 그 남자가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급하게 오른 순간,

, . 너 지렸냐.

무슨 소리야. 니 똥이겠지.

미쳤네, ㅋㅋㅋ.


고딩 놈 둘의 대화가 끝나자, 엘리베이터 가운데서 가쁜 숨을 쉬는 그 사람 주위로 원이 그려졌어. 버튼 앞의 젊은 여자는 핸드백을 몸 쪽으로 당겼고, 고딩들은 킬킬댔고, 꼭대기 층 교회에 가는 것이 틀림없는 양복의 아저씨는 헛기침을 큼큼……,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천천히 장미 상가를 올라가다

3층입니다.

유난히 커다란 안내 방송,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 남자가, 뚜렷하게,

개새끼들.


과외 수업을 할 독서실, 4층에 내렸어. 급하게 화장실로 갔지. 변기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상의 단추를 두 개 풀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어. 다행이야. 냄새는 심하지 않아. 그럼 이제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왼쪽이 사라졌다.  (0) 2018.08.13
사랑은 나에게 여전히 어렵다  (0) 2018.08.13
살 만하니  (0) 2018.08.10
요즘 신입은  (0) 2018.08.09
시작  (0) 2018.08.0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