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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잔반

엄간지 2019. 1. 10. 10:16

 

족발을 시켜먹었다.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일회용 비닐에 남은 음식들을 집어넣는다. 시킨 음식은 보통은 남는다. 둘이 아니니까. 1인분씩은 보통 주문이 잘 안 되니까.

냉장고에 남은 족발과 함께 딸려 온 반찬들을 집어넣을 준비를 한다. 언젠가 꺼내 먹겠지 하며.

 

둘이 집에서 무언가를 시켜 먹을 때 음식은 늘 많은 종류를 시켰었다. 먹는 양이 많지 않은 나지만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다. 작은 입으로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다음에 또 이 조합으로 시키자며 큰 눈을 깜빡이는 모습도 좋았고, 만족스러운 식사 후 배가 부르다며 침대에 드러누워 양팔을 벌리곤 안아달라고 하는 그녀의 얼굴이 좋았다. 음식은 많이 남길 때가 많았지만,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넣으면 되니까.

그런 그녀가 떠나갔다.

사실 조금은 알고 있었다. 나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그게 나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인지, 아니면 나 아닌 다른 일에 지쳐 날 만나는 게 힘들어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그녀도 모를 것이다. 왜 마음이 식어갔는지, 왜 만나는 게 피곤했는지.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한 번을 붙잡았지만, 그녀는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는 말만 남겼다. 나에겐 추억이 아니라 마음이 아직도 한 가득 남았지만, 알았다. 라고 했다.

나는 남은 마음들을 어찌할지 몰라 한 가득 안고 살았다. 더 이상 줄 곳도 없고, 어디 버리기엔 소중한 마음이기에 수개월을 놓을 수 없었다. 달리 할 방도가 없었다. 어제 밤 거하게 시킨 음식이 식탁에 계속 있는 것처럼 계속 불편했고, 아까웠지만 치울 수는 없었다. 치우기가 싫었다.

 

그녀는 나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고마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떠나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회를 좋아했다. 회라면 끝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족발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이야 먹겠지만, 많이는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족발 같았던 것일까. 생각하면, 그녀를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수는 없다. 그게 설령 장충동 50년 전통의 할머니 손맛의 맛집 족발이라고 한들.

 

냉장고에 차곡차곡 족발을 집어넣다가, 문득 그녀와 함께 먹고 남은 음식들로 간단히 식사를 때우던 예전 생각이 났다. 내가 그녀의 양에 넘치게 줬던 음식들을 혼자 처리하고 있노라면, 다음엔 더 맛있는 걸 줘서 남기지 않게 해야지, 라고 결심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결심마저 잘못이었을까. 그녀가 배가 불러, 혹은 입에 맞지 않아 남긴 음식들이 얼마나 비싼 들, 얼마나 좋은 음식인 들, 양에 넘치는 것은 결국 잔반이 되는 법이니까.

 

남은 것들은 순전히 내 몫이다.

그게 그녀의 흔적이 남은 음식인들, 혼자지만 어쩔 수 없이 2인분을 시킨 음식인들, 그녀에게 남은 음식들을 줄 순 없다. 언젠가 혼자 조용히 처리할지, 행여나 냉장고에 처박아 놨다가 음식물 쓰레기가 될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했던 어떤 것, 그후 남은 것들은

이제는, 그녀는 모르게, 혼자서 조용히 처리해야 할

우리가 아닌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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