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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목욕

엄간지 2018. 12. 17. 15:55

누구도 보지 않는 밤엔

나를 감출 필요는 하나도 없지

내 모든 살을 드러내도

누구도 보지 않아

 

내 부끄러움을 가려주던 옷가지를 하나씩 벗고

주위를 살피려 걸친 안경도 벗고

내 체온보다 조금 더 뜨거운 물에 던져

온 몸 묻어있는 내가 아닌 것들을 구석구석 씻어내고

 

천천히 푸욱 담가보자

감당하기 조금 힘들 정도로 뜨거웠던 때로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의 나른한 기억으로

오늘은 간신히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깊게

 

하얗게 멀어져 가는 그때들에

투사되는 수많은 기억

미세하게 헐떡이는 숨 가운데에

이미 죽어버린 웃는 내가 스쳐가

수채구멍 빠진 듯 머릿속을 돌아

 

가라앉다

가라앉다가

 

물이 새어 들어간 듯 가빠지는 호흡

구해달라는 듯 머리 양 옆을 쿵쾅거리는 박동에 정신 차리곤

내 입과 코에 누군가 들이붓듯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키고 

, 나 살아있었지

살아야 하지

하다가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겠네


맞아

누구도 보지 않는 밤엔

나를 감출 필요는 하나도 없지

온몸이 잠겨 숨을 잠시 멈춰도

누구도 봐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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