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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냉이

엄간지 2022. 6. 3. 17:18

냉이가 제철이란다.

푸릇한 낯에 퍽 달큼한 향이 난다.

제철인가 보다, 했다.

이럴 때가 제철이라고 하는가 보다, 한다.

 

꼭 머리칼 같은 부드러운 이파리를 슬쩍 건드리며

한참을 마주 보다가, 문득

 

아저씨 냉이는 봄에만 제철인가요?

하니,

냉이? 여름엔 꽃 피우고 죽어버려!

라신다.

, 죽어요?

그럼 냉이 꽃은 어떻게 생겼나요? 라는 나의 질문에 아저씨도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냉이 꽃은 잘 모르겠네, 라며.

 

문득

그해 여름, 너에게 내 푸릇한 것들을 꾹 눌러 담아 했던 말과 그 순간을 떠올린다.

네가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겠다, .

굵직한 초여름 장대비 같이 퍽하니 쏟아낸 나의 말에, 너의 큰 눈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 도리어 당황스러웠지만 서도, 내 딴에는 꽤나 적나라하게 튀어나온 커다란 마음이었다.

재채기처럼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지만, 되짚어 보면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제 예전 같은 사랑은 못 할 거라는 말들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의 계절 간 했던 사랑과, 사랑 같았던 것들과,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에 대해서. 그래서 신기하게도 꽃 때를 놓치지 않는 여느 풀떼기들처럼 나도 느낀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이 꽃을 피워 올릴 때라는 것을.

 

생에 한번 꽃을 피우고 죽는 냉이처럼, 우리도 어떤 사랑을 피워 낼지는 모르고 키워나갔다.

다만 네가 때때로 진지했던, 때로는 간절했던, 혹은 아파했던 나의 옛사랑에 대해서 투정 부리듯 질투하곤 할 때면, 나는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차분한 음성으로

앞으로는 너만 있을 건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이야기했었다.

실은 조금은 예상하고 뱉은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한다. 너로서 꽃 피우고, 시들고, 앞으로는 너의 흔적만 남은 채 죽어갈 나의 사랑을.

 

봄철, 냉이가 제철인 것은 여느 식물처럼 여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신의 생애를 담아, 혼신을 다해 빚어 올린 모든 것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 제철로 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꽃을 피워내고 죽어가는 것을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냉이.

혼신을 다해 빚어 올렸던 우리의 사랑과,

지금의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냉이를 한 봉지 사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에 서서 냉이 꽃을 검색해 본다.

하얗고 투명하지만 단단한 꽃잎을 피어냈고 안에는 꽃술들이 옹골차다.

 

그랬지, 우리도.

그랬었지.

 

꽃이 예뻐서, 예뻐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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