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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서른.09.07

엄간지 2018. 9. 7. 20:38

계단의 센서등이 고장 난 모양이다. 어두운 현관을 더듬어 6자리 비밀번호를 누른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안 누르는 번호인데 술 먹고도 잊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도 현관 센서등은 고장 나지 않았다. 비록 좁지만 나는 거실이라고 부르는 공간의 불을 키고 가방을 내려놓으며 습관적으로 마지막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911일 미팅의 건.

벌써 9월이구나.

메일을 확인하며 라면을 끓여야지, 라고 혼잣말을 하며 낡고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 불 위에 올린다. 좁은 거실이 후끈 달아오른다. 덥다. 메일을 읽으며 무심결에 창문을 연다.

 

후우욱

 

들숨처럼 공기가 화악 들어온다. 머리카락을 흔드는 공기가 제법 차다. 이맘 때 즈음의 바람은 뿌듯하리만큼 좋은 선선함이 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매콤한 라면 향기가 솔솔 빠져나가는 창문에 몸을 기댄다. 오늘은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냉장고에 맥주가 있기를 기도해본다.


이제 가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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