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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한심하거나 무능한 서른

아꼬박 2018. 9. 10. 15:31

흔한 질문이다.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

해야 하는 대로 살아왔다, 말하는 쪽은 대개 어른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듣는 쪽은 대체로 아이다. 그러므로, 삶은 하고 싶음으로 시작돼서 해야 함으로 나아가다가 해야 하므로 끝이 난다. 죽고 싶지 않지만, 죽어야 해서 죽는다는 듯이.

마지막 문장은 틀릴 수도 있겠다. 살고 싶지 않아서 죽지,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무슨 말씀이신지,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얼른 죽어야지, 늙으면 얼른 죽어 버려야지. 그러니, 인생의 어느 시기를 넘어서부터는 죽음도 본인의 의무나 타인의 강제 같은 느낌인가 보다. 죽음조차도 해야 하는 일이 되나 보다. 월요일 아침에 깨어나야 하는 일처럼.

해야 하는 일을 해내는 아이를 어른스럽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아이를 성공하기 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시멜로 실험에서처럼. 그리고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일정한 체계를 통해 충분히 훈련 받았다. 5, 더러는 주6-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에 이르는 최소 9년의 의무교육이 그랬다. 하긴, 학교는 40분 이상의 시간을 닥치고 한 자리에 앉아 있도록 엉덩이 근육을 단련시키는 곳이라고,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른은 어떨까.

서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이일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나이일까.

서른은 헷갈리는 나이다. 돌아보는 나이다. 수많은 이력서를 쓰고 지우고, 버리고 버려지고- 설명회와 박람회와 면접장, 또 그 다음 면접장을 전전하며 죽도록 하고 싶은 게 이 일이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월세를 내야 하니까, 밥을 먹어야 하니까, 옷도 사야 하니까,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니까, 한다. 해야 하니까, 한다.

그러면서도 서른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나이기도 하다. 일을 그만둬도 되지 않을까, 그만둬도 큰 후회는 없지 않을까, 후회보다 꿈이 먼저지 않을까, , ‘더 늦기 전에로 시작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로 끝나는 무수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서른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되고 싶은 나이다. 더 늦기 전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서른은 해야 하는 일이 삶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서른은 한심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일만 하면 한심-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잖니-하고, 해야 해서 했는데 잘 못하면 무능-자네는 이것도 제대로 처리 못하나-하다. 서른은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배웠지, 해야 하는 일을 잘하는 법에 숙련되어 있지 않다.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고 선임의 지시를 따르듯- 상사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훈련 받았지, 상사가 지시하는 이 일을 잘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다. 정확히는, 배우는 중이다. 아니, 비난과 질타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가을이 온다. 뜨거움은 갔다. 꿈 같은 건 나이테처럼 속으로만 그려 본다. 지나간 사랑은 옹이처럼 딱딱해졌다. 오늘이 그랬듯, 내일도 그렇게 고개를 떨굴 것이다. 나뭇잎을 떨구듯, 당연한 일이다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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