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서른서른해
첫눈 본문
첫눈이 옵니다.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여미며 바쁜 퇴근길을 재촉합니다.
떠다니던 기억들이 날려 머리에 닿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그 생경한 흙 바닥 운동장의 첫 감촉과
청자켓을 입은 영화초등학교 1학년 3반 어여쁜 짝꿍 그 아이와의 첫 대화와
적당히 줄인 교복에 후드를 즐겨 입던 그녀에게 부들부들 떨며 했었던 첫 고백과
19살 수능시험이 끝나던 날 멍하니 걸었던 그 길의 첫 좌절감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버렸던 첫 이별과
신병훈련소에서의 첫 아침 먹었던 우유의 첫 맛과
그 처음들에 함께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얼굴들이.
고요한 하늘 아래 먹먹한 빛을 머금고.
‘처음’
여전히 소중하고 예쁜 단어이긴 하지만
첫 입학, 첫 시험, 첫 졸업, 첫 사랑, 첫 수능, 첫 입대, 첫 입사.
조금은 설레고, 또 조금은 무섭고 두려운 울림이 가득한 단어였던 것 같은데
‘처음’
이젠 설렘 대신 아련한 추억이, 아릿한 상처가 기억이 나는 것은
이 밤, 늦은 퇴근 탓에 피치 못할 우울한 마음 때문일까요
늙었다고 하기엔 가소롭지만 어리다고 하기엔 민망한 나이이기 때문일까요
올해도, 첫눈이 옵니다.
생각해보면 고맙네요.
그립고 아픈,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
첫사랑, 첫 키스, 첫 이별과는 달리
그래도 첫눈은 매년
돌아오니까
내가 첫사랑이라던 눈이 크던 그녀
전화기 속 한껏 들뜬 그녀의, 첫눈이 와 오빠
하는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방금 귓가를 지난 눈송이에서 조금
들려옵니다.
서른 번째, 첫눈이 옵니다.
늙었다고 하기엔 가소롭지만 어리다고 하기엔 민망한
내게도
올해도 어김없이
첫눈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에게도,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