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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짐 정리

엄간지 2019. 12. 9. 14:16

이삿짐을 싸며

쓰지 않을 물건을 정리하다가

마주칩니다.

장롱 안 종이상자.

 

눈에 걸치면 마음 아플까 깊숙이 숨겨놓았던, 언젠가 내 생일 선물을 담아 주었던. 그 상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녀가 주었던 편지들과

그녀와 함께 보았던 콘서트의 팜플렛 그녀와 탔었던 기차표, 비행기 티켓

 

2년 전 이맘때 즈음부터는

편지도, 사진도, 티켓도 쌓이지 않았겠구나.

생각하며

편지 봉투에 나란히 적혀있는 그녀와 나의 이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젠가 다시 쓸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걸까,

여태껏 남겨 놓은 상자를

이제 쌓이지 않을 상자를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쓰지 않을 물건을 정리합니다.

이제는 쓰지 않을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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