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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매미

엄간지 2019. 8. 6. 10:49

이제 괜찮아 보이네?

등을 툭 치는 친구의 손길에 나도 웃어 보인다. 창피하게도 그녀가 없어 무너져가는 나를 많이 보여주었던 친구. 고마워서라도 더욱 괜찮은 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저녁, 멀리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소주 한잔 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안부에 웃으면서 전한다. 직장은 잘 다니고, 운동을 시작했어. 취미생활으로 밴드를 시작했어. 영어 회화를 공부하면서, 다른 일들을 생각해 보고 있어. 친구는 고개를 끄덕인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더니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친구의 말에 웃으며 잔을 바라본다. 잔에 비친 웃는 내 얼굴이 아직 좀 낯설다.

멋진 사람이라.

손을 흔들며 막차를 타러 가는 친구를 배웅한다. 더 멋지고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라는 친구의 인사에 반사적으로 웃는다. 친구가 힘내라는 포즈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라져 간다.계속 웃으며 친구를 배웅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올라간 입 꼬리가 아직도 억지로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걷다가, 얼굴이 아파 입 꼬리를 내렸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인데도 아직 매미가 운다. 제 짝을 구하기 위한 제 몸집에 비해 너무 커다란 매미의 소리. “날 사랑해줘요! 날 사랑해줘요!” 저 소리를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죽어버린다지. 요즘엔 해가 다 진 시간에도 밝은 빛들 때문에 매미가 밤에도 낮인 줄 알고 열심히 울어재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더 빨리 죽는다고.

집 앞.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현관에 비친 모습을 본다. 잘 손질한 머리, 깔맞춤을 한 옷들이 보인다. 직장은 잘 다니고, 취미도 있다. 영어 회화도 한단다.

아무리 네가 멋있어져도 그녀는 널 다시 사랑하지 않아.

매미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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