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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소문자의 서른

아꼬박 2018. 8. 25. 19:24

영웅전설’이라는 게임을 기억하는지. 


어릴 적나는 악명 높은 드래곤으로부터 공주를 구하는 왕자였다. 나는 무수한 전투를 치르는 용사였다. 나는 동굴과 풀숲과 미로를 헤매는 탐험가였다. 나는 마을과 마을을 표류하는 여행자였다. 마침내 나는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영웅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전설이었다. 시인의 송시, 백성들의 찬양, 공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랬다. 나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떤 게임이든, 성장하지 않는 주인공은 없다.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서는 무수한몬스터 X’()가 등장해야 한다.

 

서른이 됐다. 성장하지 않는’()가 됐다.

주인공이 아님을 아는’()가 됐다.

 

그렇다. 지금은 몬스터가 기억에 남는다. 전설의 무기를 온몸에 두른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엔딩 화면보다- 조악하고 획일한 전투 화면과, 반복되는 전투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a, 몬스터 b, 몬스터 c, d, f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1인용이다. 엔딩은 1회성이다. 그러나 전투는 무한하다. 몬스터는 무수하다. 주인공의 차오르는 경험치만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 아래는 그들의 무수한 죽음이 깔려 있다.

 

그래, 이름 모를, 몰라도 되는 ‘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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