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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서른서른해
펼쳐 보인 내 마음을 너 역시 모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싸구려 비닐 우산처럼, 내 마음은 투명했다. 다만 우리 사이엔 줄지 않는 일정한 공백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였다. 언제나 빛나는 햇살처럼, 너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누구에게나 밝았고, 씩씩했고, 인기가 많았다. 그런 네게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싸구려 비닐 우산처럼, 나는 대체될 수 있는 흔한 친구 중 하나였다. 오래됐을 뿐이었다. 다만, 지나치게 우울한 날이면 너는 나를 찾아왔다. 그런 때 우리는 밤늦도록 통화를 하거나, 오래도록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너에게 우울은 젖어드는 것이 아니라 말라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네가 우울에 말라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펑펑 우는 날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싸구려 ..
동경한다.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았을 무렵의 자몽빛 하늘. 아득히 들려오는 자동차 바퀴 소리,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쳐가고, 귀가한 주인을 격히 반기는 강아지 우는 소리가 가로등 켜지듯 이 집, 저 집 켜지는 골목. 반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은 두 손. 왼쪽 주머니에는 지갑,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 가악가악. 아스팔트에 갈리는 슬리퍼 소리. 무심히 걷어내는 주황 빛 폴리에스테르 비닐. 또 왔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반가운 인사.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 그 위에 앉자마자 놓여지는 초록빛 영롱한 소주 병. 그리고 촉촉히 젖은 하얀 빛의 우동과 새콤하리만큼 노란 단무지. 그때쯤 욕을 하며 들어오는 면도를 안해 턱밑이 거뭇한 고등학교 친구. 소주 4000원, 우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