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소주 (2)
인생은 서른서른해
소주를 먹는다.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실 수 있다. 주스를 마실 수 있다. 콜라를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목이 말라서 소주를 마시진 않는다. 소주는 갈증 같은 생리적인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주가 채우는 건 갈증이 아니다. 소주는 추억을 밀어내고 망각을 채운다. 잔 속에 추억이 투명하게 차오른다. 빈 잔에 망각이 차오른다. 먹을수록 추억은 진해진다. 동시에, 휘발된다. 들이킨다. 내려놓는다. 채운다. 흘려 보낸다. 소주는 추억을 먹는다. 나는 망각을 먹는다. 잊고 싶은 것이 많았다. 살이 쪘다. 뱃살의 8할은 소주인 것 같다. 8할은 잊었다. 나머지 2할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린다.
동경한다. 아직 해가 채 지지 않았을 무렵의 자몽빛 하늘. 아득히 들려오는 자동차 바퀴 소리,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쳐가고, 귀가한 주인을 격히 반기는 강아지 우는 소리가 가로등 켜지듯 이 집, 저 집 켜지는 골목. 반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은 두 손. 왼쪽 주머니에는 지갑,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 가악가악. 아스팔트에 갈리는 슬리퍼 소리. 무심히 걷어내는 주황 빛 폴리에스테르 비닐. 또 왔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반가운 인사.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 그 위에 앉자마자 놓여지는 초록빛 영롱한 소주 병. 그리고 촉촉히 젖은 하얀 빛의 우동과 새콤하리만큼 노란 단무지. 그때쯤 욕을 하며 들어오는 면도를 안해 턱밑이 거뭇한 고등학교 친구. 소주 4000원, 우동 ..